세상의 구성원이 모두 수인인 세상이 있었음. 다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한 수인임에도 수인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동물의 성격에 따라 육식과와 초식과로 무리가 나뉘었음. 그런 세상 속에서 쿲과 훉이 살고 있었는데 크게 차별이 있어 인권이 바닥을 친다던가 그런 사회는 아니었음. 그렇지만 사회를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초식과를 은근히 사회적 약자나 하급층으로 보는 의식이 깔려있었음. 그래도 사람으로써 기본적인 대우는 살아갈 수 있는 정도라서 표면으로 그 차별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직업군에서는 육식과의 일과 초식과의 일이 구분되는 건 있었지. 그중에서 특히 군대라던가 경찰, 경호원 계열의 일들은 주로 육식과나 잡식과인 사람들만 맡을 수 있었음.


  그런 세상 속에서 어릴 적부터 훉이 되고 싶었던 건 목표가 단 한 가지였음. 자기가 경호원이 되어서 제 몸을 지키고 제 주위 사람을 지켜주고 싶다는 것. 초식과가 크게 차별은 받지 않아도 약간 하대시 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알게 모르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적이 많았기 때문에 훉은 어릴적부터 주위의 비웃음과 만류, 조롱과 걱정에도 흔들림 없이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했음. 그래서 훉이 크고 난 이후에도 여러 경호 업체에 이력서를 넣고 입사하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음. 그렇게 여러 회사에서 떨어지며 나날을 보내다 어느날 정말 좋은 기회로 경호 업체 중 육식과가 많이 있고 나머지가 잡식과로 채워져있는 경호 업체 중에서도 탑급인 회사에 이력서를 패기로 넣어봤는데 정말 기적적으로 합격 통보가 온 것. 그래서 훉은 살면서 울었던 날이 손꼽았지만 그날만큼은 합격 통보를 보고 엉엉 울만큼 기뻐했음.


  그렇게 제 꿈을 이루게 되어 부푼 꿈을 안고 훉이 입사를 했을 때 훉의 앞에 펼쳐진 앞날을 그렇게 맑지 못했음. 훉이 입사를 했지만 딱히 훉의 회사에서는 훉에게 뭔가의 대우를 해주지 않았음. 입사를 한지 몇 달이 지났음에도 훉은 어느 부서나 팀에도 속하지 않았고, 어떤 업무도 들어오지 않았음. 그래서 훉은 몇 번이고 인사부에 가서 이야기도 꺼내봤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초식과면 입사 시켜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 조금만 기다리라는 대답만 돌아왔음. 그런 반응에 훉 너무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이직을 생각하기에도 자기를 받아주는 곳이 여기 말고 다른 곳이 있는 게 아니라서 비굴하더라도 일단 붙어있었음. 자존심 상하지만 그래도 월급은 꼬박꼬박 들어오고, 자기는 자기 집의 가족들을 책임지려면 이렇게라도 수입을 벌었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며칠을 기다렸는데 훉은 알지 못했지만 훉이 입사를 하게 된 배경에는 윗선들의 이미지메이킹 전략 때문이었음. 사회에서도 점점 초식과를 차별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스물스물 나오니까 우리 회사는 초식과도 실력이 있으면 뽑는 그런 차별 없는 회사다. 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훉을 뽑았던 것. 그러고 나서 속내는 그런 게 아니니까 훉을 유령처럼 굴리는 거였고. 훉은 그래도 기다리면 언젠가 일이 오겠지, 나도 현장을 뛸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하면서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그런 훉에게 찾아온 것은 좀 더 비참한 환경이었음. 그래도 이제까지는 출근을 하게 되면 빈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그냥 지나가던 상사가 하나둘 던져주는 서류 업무라도 하고 있었는데 이젠 훉에게 회사 직원들이 괴롭힘을 하나둘씩 행사하기 시작한 것.


  처음 시작은 미미했음. 그냥 평소에 초식과를 가볍게 보는 잡식과 사람 한 명이 업무를 뛰고 돌아와 정수기에서 물통에 물을 받고 있던 훉을 보더니 괜히 시비를 건다고 훉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 것을 도화선으로 다른 사람들이 점점 훉을 무시하기 시작한 것. 이젠 훉이 있으면 괜히 때리는 건 기본이고, 자기들 업무를 다녀와서 고객에게 한 소리 듣고 돌아오면 그 쌓인 스트레스를 온전히 훉에게 욕이나 험한 말로써 퍼붓거나 심하면 훉을 구석으로 몰아놓고 폭력으로써 괴롭혔음. 훉은 처음에는 자기도 경호원으로써 배울 것들을 배워왔으니까 상대하면서 견뎌내는데 점점 강해지는 강도와 괴롭힘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기 시작하니까 훉으로써도 버텨내기 힘들어졌음. 하지만 가족들의 생활이 자기 어깨에 달려있으니 그만두지도 못하고 이를 악물고 견뎌내는 나날이었음. 그러다 어느날 일이 터졌음.


  어느날처럼 업무를 하고 돌아온 잡식과 중 몇몇이 자기 상사인 육식과에게 깨져서 기분이 좋지 않던 날 당연하게 훉에게 스트레스를 풀려고 훉의 사무실을 찾아왔고, 평소처럼 훉을 툭툭 때리면서 괴롭히다 누군가의 말 하나로 일이 커지게 된 것.



- 야, 그러고보니까 애는 본체화 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아?

- 본체화? 그렇네. 한 번도 못 봤지?

- 초식과 새끼가 맨날 버티고 있는 것도 꼴보기 싫은데 얼마나 고귀한 초식과면 저렇게 맨날 고개를 버티고 있는지 궁금하네.



  훉은 무자비한 폭력을 받아내고 있는 중에도 그 말은 확실하게 들려서 눈이 크게 뜨였음. 수인 사회였지만 인간의 모습을 더 많이 띄고 있기 때문에 본체화하게 되어 자신의 본체인 동물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건 옷을 발가벗은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훉은 거기까지만큼은 절대로 비참해지고 싶지 않아서 도망쳐서라도 이 상황을 피하려고 하는데 그런 훉을 눈치챘는지 훉을 둘러싸고 있던 잡식과 중 족제비가 훉의 뒷덜미를 잡아서 도망가지 못하게 훉의 양 팔을 뒤로 결박해서 잡고 무릎을 차서 무릎을 꿇게 했음. 훉은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면서 하지말라고 소리를 질렀고 발버둥쳤지만 그런 훉의 반항을 가소롭게 생각하고 훉을 괴롭히던 무리들이 자신들의 기운을 풀었음. 기운은 보통 육식과들이 본체인 동물의 습성에서 내려져 오는 능력이었는데 호랑이가 눈빛만으로도 초식 동물들을 제압하던 그 위압감과 같은 능력을 기운으로써 풀어낼 수 있었는데 육식과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잡식과까지는 기운을 풀 수 있었지만 그저 사냥감에 불과하던 초식과인 훉은 그 기운을 펼치기는커녕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음.


  훉을 본체화 시키기 위해 잡식과 녀석들이 기운을 풀었지만 훉은 죽어도 자기의 본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악 물고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만큼 꽉 쥔채로 자기의 본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음. 하지만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의 잡식과들이   한 번에 내뿜는 기운을 훉이 아무리 견디려고 해도 역부족이었고 훉의 정신이 살짝 아득해지려던 찰나 훉의 본체의 일부가 퐁 하고 튀어나왔음. 훉의 머리 위로 축 늘어진 긴 귀가 늘어졌고 훉의 무릎이 꿇려진 다리 사이로는 작고 솜뭉치 같은 흰 꼬리가 튀어나왔음. 그걸 느낀 훉은 너무 수치스럽고 비참해서 자기의 바닥까지 드러내 보인 꼴이 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결국 두 눈에서 입사한 후 처음으로 눈물을 쏟아냈음. 그리고 이제껏 맞으면서도 한 번도 지르지 않았던 소리를 목이 터지도록 악악 지르면서 자기의 이런 상황을 원망하고 너무 비통해 했음. 옆에서 잡식과 무리들은 이 토끼 좀 보라면서 훉의 귀를 툭툭 건들면서 조롱하면서 낄낄 거리면서 웃는데 그 소리가 그 순간 복도를 지나가던 쿲의 귀에 들렸음.


  쿲은 경호 2팀의 팀장이라 사실 조금 수준이 낮은 팀들이 있는 이 층에는 잘 내려오지 않는데 그날은 마침 볼일이 있어서 내려오게 되었는데 업무를 하고 있어야 할 몇몇의 직원들은 보이지 않고 복도의 구석진 곳의 사무실에서 누군가의 우는 소리와 정말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르는 소리, 그리고 누가 들어도 그런 소리의 주인공을 비웃는 듯한 웃음 소리에 쿲은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음. 한 문 앞에 가서 발걸음을 멈추자 확실히 이 안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문 바깥에서부터 여러 잡식과들의 기운이 느껴지자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해서 인상을 지푸리고 문을 망설임 없이 열어제꼈음. 문을 열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여전히 두 팔이 뒤로 잡혀서 몸에 힘이 축 늘어져서 귀를 늘어보인 채로 이젠 힘없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한 초식과와 그 주위를 둘러싸 웃고 있는 잡식과들. 그걸 보자마자 전에 들었던 회사에 입사한 최초의 초식과 경호원이 저 사람이고, 지금 괴롭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음.


  쿲은 평소에 이런 불의를 굉장히 싫어하던 성격이라 단번에 표정이 굳어지고 그대로 자기도 잡식과들이 했던 것처럼 자기 기운을 가감없이 크게 쾅 하고 풀어내자 사무실 안에 있던 잡식과들은 육식과 중에서도 상위 포식자의 조절없는 기운을 그대로 맞고 자기들의 본체를 펑펑 하고 드러냈음. 자기들이 훉에게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받고 자기들의 본체도 드러나게 되자 지들도 부끄러운지 얼른 자기들의 귀와 꼬리를 감싸고 사무실을 도망쳐 빠져나가는 모습에 쿲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쯧 하고 차는데 방 안에서 끅끅 거리면서 숨을 쉬지 못하는 듯한 소리에 급하게 아차 하고 자기가 내보냈던 기운을 갈무리했음. 잡식과에게도 큰 충격이 되는 기운인데 초식과인 훉에게는 더 무리가 될테니까.


  훉은 그렇게 힘이 다 빠져있는 상태에서도 완전히 본체화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무던히 애를 썼고 겨우 본체화가 되는 것은 막았지만 숨이 턱하고 막혀오니까 끅끅거리다 쿲이 기운을 거두니까 그제야 숨통이 트여서 헉헉 하고 막혔던 숨을 토해냄. 하지만 귀와 꼬리가 아직도 들어가지 못한채로 늘어져 있으니까 또 한 명에게 자기 본체를 보였다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눈물이 다시금 쏟아져 나오겠지. 그런 훉을 본 쿲은 딱히 다른 말도 하지않고 자기가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서 훉의 몸 위로 머리에서부터 몸이 덮이도록 덮어줌.



- 나가있을테니까 몸 추스리고 나와요. 일단 오늘은 퇴근시켜줄테니까.



  쿲이 그렇게 자기를 보지 않고 얼른 나가주니까 훉 고맙기도 한데 참담하기도 하고 그런 복잡한 감정을 느낌. 이게 쿲과 훉의 첫 만남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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