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2018. 7. 19. 23:59

[쿱지/결혼기념일 특별연성] Sweetie

written by. 11월의 눈꽃






한낮의 조용한 집안. 그 적막을 깨는 누군가의 허밍 소리가 소리의 주인이 꽤나 신이 난 상태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소리는 부엌에서 들리는 듯했고 부엌 안에는 노란색 병아리가 그려진 앙증맞은 앞치마를 입고 칼질을 하고 있는 지훈이 서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이상한 게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관성이라곤 하나도 없게 잘린 당근, 물이 닿은 흔적 하나 없이 빳빳하기가 종이 저리 가라 할 만큼 깔끔한 게 방금 뜯은 새것 같은 앞치마는 평소 지훈의 요리 실력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실 지훈은 평소에 요리를 전혀 할 줄 몰랐다. 평소 한 번 필이 꽂히면 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먹는 걸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직업이라 주위에서 챙겨주는 음식을 먹는 게 익숙했고, 시도는 해보려고 했었지만 요리는 영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게 제 취향이 아니라 혼자 자취를 했을 때부터 결혼 후 집을 합친 이후로도 굳이 요리를 손에 대지 않았었다. 그런 지훈이 스스로 집을 나가 마트에서 장을 봐오고 이렇게 기분 좋은 티를 내며 요리를 해보기로 마음먹은 것 아마 지훈의 왼손 약지에 끼워져 반짝이고 있는 저 반지가 그 이유였다.


지훈은 고등학교 시절에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얼굴을 붉히고 손을 덜덜 떠는 한 선배에게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선배는 지훈이 축제 날 친구(a.k.a 전발라드)의 무대를 도와주기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해줬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지훈과 친해지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었다. 이렇게 친해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얼떨떨 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 좋다는 사람이라 크게 경계심 없이 저에게 말을 걸어올 때마다 대답해주고 받아주고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하다 보니 선후배 관계에서 형 동생 사이로, 그게 대학을 가서도 이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CC를 거쳐 졸업 이후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어있었다. 그때 그 선배는 지훈의 남편인 승철이었고, 후에 연애를 한 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승철이 지훈에게 첫눈에 반했었는데 지훈에게 부딤이 되지않게 천천히 다가가기 위해 친해지고 싶었다 이야기 했었다는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런 승철과 지훈이 연인에서 부부로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지 자그마치 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결혼 5주년이라는 큰 기념일은 요리 알못인 지훈을 부엌에 들어오게 했고, 지훈의 목표는 결혼 후 처음으로 제 손으로 승철에게 요리를 해주는 것이었다.

 

 

 

재료 손질은 다 끝났고. 이 다음에는~”

 

 

 

오늘 메뉴의 콘셉트는 피크닉. 결혼기념일과는 조금 안 맞긴 하지만 지훈이 도전해볼 수 있는 음식으로써는 가장 쉬워 보이는 음식이 그뿐이라 메뉴로 선정되었다. 그렇지만 분명 승철은 지훈이 어떤 음식을 해줘도 좋아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 지훈은 만들기만 잘하자는 마음으로 본격적인 요리에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지훈이 간과했던 것은, 지훈은 앞서 말했듯 요리 알못이었고 피크닉 음식이 보기엔 쉬워 보여도 생각보다 더 많이 까다롭고 어려운 음식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단은 언제 뒤집어야 하는거야?”

아악, 이거 찢어졌어!”

앗뜨! 앗 뜨거!”

뭐야, 연기! 연기! 탄다, !”

 

 

 

처음에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부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요리를 시작한 이후 지훈에겐 환장과 속 터짐만 남았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음식은 데코마저 소질이 없는지 완성한 결과물에 지훈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건 지옥에서 올라온 비주얼이잖아.”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놀다 한 번쯤은 보고 웃으며 지나쳤을 법한 지옥 같은 비주얼의 도시락이 설마 제 손에서도 탄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지훈은 이 도시락을 버려야 하나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비주얼은 이래도 맛을 있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하나 만으로 차마 보기 힘든 비주얼은 잠시 뚜껑을 덮어 닫아놓고 승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식탁에 앉아 핸드폰을 보며 승철이 오기만을 기다렸을까. 시간이 지나 도어록을 해제하는 소리가 들리고 저를 부르는 승철의 목소리가 들리자 지훈은 용수철이 튕겨나가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막 현관에서 들어오는 승철은 저를 맞으러 나와주는 지훈의 얼굴을 보자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려 지훈을 끌어안았다.

 

 

우리 지훈이 오늘도 작업하느라 고생 많았지. 밥은 먹었고?”

, 형이 아침에 챙겨준 거 먹었어.”

어구 잘 했어. 일단 들어가서 앉자.”

 

 

승철은 저에게 안긴 지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며 웃어보이다 지훈의 허리를 끌어안고 뒤뚱거리며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승철이 지훈과 함께 안방으로 들어가다가도 부엌 앞을 지나가면서 문득 걸음을 멈춰섰다.

 

 

? 오늘 부엌에서 뭐 했어? 요리 냄새 나는 거 같은데.”

, . 일단 먼저 옷부터 갈아 입는 게 어때? 형 옷 불편하잖아.”

 


부엌에서 음식 냄새가 났는지 승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는 말에 지훈은 얼른 승철을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침대에 걸터앉아 승철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 걸 쳐다보고 있으니 승철이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단추를 풀다가도 지훈의 시선을 느끼고 씨익 웃어보였다.

 

 

형 몸이 좀 좋긴 하지?”

음 그건 인정. 사실이라 반박을 못 하겠네. 반박 할 이유도 없지만.”

 

 

승철의 장난스러운 말에 지훈도 장난스럽게 받아치자 옷을 갈아입던 승철이 지훈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지훈의 앞에 섰다.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추고는 지훈의 입술에 부드럽게 버드키스를 해주고는 몸을 일으켜 뒤돌아 마저 옷을 갈아입었고 지훈은 그런 승철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승철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기를 마치자 지훈은 손을 잡고 떨리는 마음으로 부엌으로 이끌었다. 의자를 꺼내 승철을 앉히고는 지훈은 수저와 젓가락 두 세트를 가지고 승철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승철은 식탁 위에 놓인 도시락 통을 보면서 궁금하다는 눈빛을 보내다 지훈이 뚜껑을 열자 눈이 동그래지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좀 못생기긴 했지? 우리 오늘 결혼 5주년이라 큰 맘 먹고 형 해주려고 일부러 저녁도 집에서 먹자고 그랬는데.”

그런 게 어딨어. 형 지금 너무 감동이라 이거 아까워서 못 먹을 거 같아.”

정말?”

. 정말로. 지훈이 네가 누구한테 음식 해주는 거 처음이잖아. 그런 걸 형이 받아도 되나 감격스러워.”

 

 

그렇게 말하는 승철의 표정은 진심이 가득한 표정이었고 이제는 표정만 봐도 서로의 사소한 변화도 눈치채는 둘이라 지훈은 그제야 한시름을 덜 수 있었다. 승철에게 젓가락을 건네주자 젓가락으로 김밥을 하나 집어 드는 승철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하며 눈으로 좇았고, 승철이 김밥을 삼키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대답을 기다렸다. 승철은 슬쩍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지훈을 쳐다봤다 김밥을 몇 개 더 집어먹었다. 대답 없이 그저 웃으며 김밥을 먹는 승철의 반응에 괜히 불안해진 지훈이 맛이 없냐 물어도 승철은 그저 아니라고 맛있다고 대답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계속 불안한 마음에 지훈도 슬쩍 자기가 만든 김밥을 그제야 하나 맛을 보았는데 김밥을 입에 넣자 입에서 달달하게 퍼지는 맛에 시선이 흔들렸다.

 

 

김밥이달아도 돼?”

 

 

지훈이 혼란스러워하며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승철이 웃음을 터뜨리며 그런 지훈의 볼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콕 찔렀다.

 

 

우리 지훈이가 형 사랑하는 만큼 김밥도 달달해서 그런가봐.”

밥 간 할 때 소금을 넣는다는 게 그만 설탕을 넣었나봐. 미안해이거 먹지 말고 차라리 우리 나가서 저녁 먹자.”

아냐. 좀 달긴 한데 심하게 단 건 아니고 그래도 맛있어. 형 이거 다 먹을래.”

 

 

지훈이 도시락을 치우려고 하자 승철이 지훈을 제지하며 결국 그 도시락의 바닥이 드러나게 깔끔하게 비웠다. 그래도 지훈은 시무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의자를 끌고 승철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승철의 품에 안겨 우는 소리를 내며 부끄러움에 조금이라도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형은 이걸 어떻게 진짜 다 먹어? 맛 없으면 먹지말지.”

? 맛있었는데?”

말도 안돼. 어떻게 이게 맛있어. 내가 먹어도 맛 없는데.”

말했잖아. 지훈이가 형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이렇게 달달한 거 같다고.”

 

 

승철은 그렇게 말하면서 괜찮다며 지훈의 등을 토닥토닥 가볍게 두드려주었고 그래도 여전히 민망해하는 지훈에게 이야기를 이었다.

 

 

분명 엊그제 연애하면서 서로 집에 데려다주고 했던 것 같은데 결혼하고 나서 같이 지내온 시간이 굉장히 길었다. 그치.”

그치.”

그럼 그동안 지훈이는 형 좋아하는 마음이 어떻게 됐어? 시간이 지나니까 조금 시들해지고 그런 거 같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당연히 더 좋아지면 좋아졌지. 시들해졌을 리가 없잖아.”

 

 

지훈의 말을 들은 승철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제 품에 안겨있는 지훈의 두 볼을 손으로 잡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저와 눈을 맞추게 했다. 그리고는 지훈에게 믿음을 주듯 확고한 눈으로 눈빛을 보내며 꺼내는 이야기에 지훈의 얼굴에도 편안한 웃음이 지어질 수 있었다.

 

 

형은 그걸로 이미 지금 충분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은 거 같아. 말했잖아. 지훈이 사랑이 넘쳐서 음식도 달달한 거 같다고. 나 주려고 이렇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만들면서 어디 다치고 그런 곳은 없지?”

 

 

맛이 없었을 법한 김밥을 맛있게 먹어준 것도 고마운데 부족한 제 솜씨를 탓하지도 않고 오히려 시무룩한 저를 달래주는 승철의 따뜻한 다정함에 지훈은 결혼 한 지 5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사람과 결혼한 것을 단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지훈이 편하게 웃으며 승철을 더 끌어안으며 아까 시무룩하게 파고들던 움직임과 다르게 기분 좋은 고양이처럼 품을 파고들자 승철은 지훈의 머리칼에 쪽쪽 입을 맞췄다.

 

 

그나저나 내가 이거 다 먹어버려서 어떡하지. 지훈이 저녁 못 먹었는데. 아까 도시락은 지훈이가 형 위해서 만들어 준거니까 이번에는 형이 지훈이 위해서 만들어줘야겠다.”

형 일 하고 왔는데 안 피곤하겠어?”

우리 후니 먹이는 거면 하나도 안 피곤해요~”

근데 있잖아 형, 사실 내가 아까 요리 계속 실패해서 재료를 다 썼는데.”

 

 

지훈의 말에 승철은 그럴 수 있다는 듯 괜찮다고 지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지훈의 앞에 두 손을 내밀어 지훈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그럼 같이 마트 다녀올까? 다녀오는 김에 소소한 데이트도 하고?”

좋아!”

 

 

승철과 지훈은 방으로 들어가 가벼운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왔고, 현관문을 열고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은 누가 봐도 알콩달콩한 부부의 모습이었다. 마트까지 가는 그 시간에도 오늘 하루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하고팠던 말이 그렇게도 많았는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눈으로는 다정한 시선을 주고받는 두 사람. 이젠 없어서도 안되고 너무 큰 존재로 남아버린 이 사이가 너무나도 좋았다. 승철과 지훈은 꼬옥 잡은 두 손을 더 빈틈없이 맞잡으면서 말하지 않아도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우리의 시간은 5년, 10년, 20년… 긴 시간이 지나도 여전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