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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웆/전웆전력] 마지막, 그다음은 처음

11월의 눈꽃 2019. 6. 23. 23:03

 시야 저편에 걸린 시계를 몇 번이고 힐끔 거리는 동안 막차 시간까지 남은 시간이 줄어들수록 내 초조함은 커져만 갔다. 내 마음을 몰라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그러는 건지. 불안한 마음을 숨긴 채로 아무 일도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소주잔을 들어 마시는 척 테이블 아래로 버려버리길 몇 잔째 이러고 있는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마시지도 않은 알코올이 참 속을 타게 만들었다. 듣고 있냐, 이 알코올 같은 전원우야.

 

 

 

 

 

[전웆/전웆전력] 마지막, 그다음은 처음

Written by. 11월의 눈꽃

 

(전웆전력 100회를 축하합니다~ (*ノ・ω・)ノ♫)

 

 

 

 

 

 처음 시작은 신입생 OT 때였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사람, 성인이라는 새로운 세계.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나를 들뜨게 만들었고 그 흥분은 결국 과음으로 이어졌다. 주량이 세지도 않으면서 선배들이 주는 잔을 전부 받아 마시다가 결국 정신이 붕 떠버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귀소본능은 뛰어났는지 막차 시간을 챙기는 건 잊지 않았나 보다.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아~"

 

 

 

 혀는 꼬이고 말꼬리는 늘어지는 전형적인 만취 상태였지만 시계를 보고는 집에 가겠다고 겉옷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기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도 하고 선배들에게 허리도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옷 사이에 고개를 파묻으며 걸음을 옮기려는데 꼬인 게 혀뿐만이 아니라 내 발도 꼬였는지 그대로 중심을 잃었다. 이대로 엎어지겠거니 눈을 꼭 감았는데 아픔이 느껴지지 않아서 실눈을 힐끔 떴다. 어라, 나 공중에 떴나 봐. 헐 나 초능력자인가?

 

 

 

"조심해."

 

 

 

 엥 아니네. 분명 다리는 힘이 풀렸는데 여전히 멀쩡하게 서 있는 내가 신기했는데 뒤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그제야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를 잡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럼 그렇지 하며 김이 빠져서 고개를 돌리자 아까 식당 안에서 봤던 낯선 듯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동기 중에 한 명이었는데, 이름이… 전원우였던가. 얘도 집에 가려던 모양이었는지 가방까지 메고 있는 모습이었다.

 

 

 

"너도 집 가려고? 같이 가자!"

"넌 어디 사는데."

"나 저~쪽으로 가서 버스 타면 돼."

"…그래. 같이 가지 뭐."

 

 

 

 식당 안에서는 통성명만 했었는데 술의 힘인지 돌연 전원우에게 같이 집에 가자고 말을 했다. 그런 내 제안이 갑작스러웠을 텐데 생각보다 전원우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가는 방향이 같았나 싶어 그것마저 한껏 즐거워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물론 그때도 내 백팩을 잡고 있는 전원우의 손은 여전했지만 딱히 신경 쓰이는 건 아니라서 내버려 뒀다.

 

 막차여서 그런지 승객이 나와 얘뿐이었고 덕분에 한껏 재잘 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전원우에게 말을 걸었다. 술에 취해서 말이 많아진 내가 귀찮을 법도 할 텐데 전원우는 생각보다 내 모든 말을 받아주었다. 끊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내가 내릴 정류장이 가까워 왔을 때 손을 뻗어 하차벨을 눌렀다. 너는 어디서 내리냐는 내 물음에 전원우는 짧게 '글쎄, 나도 곧?'이라고 알쏭달쏭 한 답을 했다.

 

 

 

"내리는 곳도 같다니 되게 신기하다. 우리 되게 근처에서 사나 봐."

"넌 이제 어디로 가는데."

"나? 바로 여기 아파트. 집까지 금방이야!"

"다행이네. 이제 조심해서 들어가."

"응. 너도 조심해서 가~"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러고 보니 어디 사는지 나만 알려주고 물어보진 않은 것 같아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돌아 주위를 둘러보는데 집을 향해서 가고 있어야 할 애가 왜 반대편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는 건지.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자리에 멈춰 서서 가만히 보고 있으니 전원우는 핸드폰을 한 번 들여다보더니 버스 정류장에 등을 기대고 하늘을 향해 입김을 뱉었다.

 

 모양새가 영락없이 집으로 가는 모습은 아닌 것 같아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멍하니 있더니 옆에서 다가오는 내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고개를 돌리는 네 표정은 처음으로 보는 놀란 표정이었다.

 

 

 

"너 집 안 갔어?"

"그러는 넌. 집 안 가?"

"……."

"다시 물어봐야겠다. 너 어디 살아?"

"…학교에서 반대 방향."

 

 

 

 완전히 내 집과는 반대편 방향에 사는 네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네 말을 들으니까 술기운이 다 날아가 버렸다. 아까 내가 타고 왔던 게 막차였는데 대체 어떻게 집에 돌아가려고.

 

 

 

"아까 우리가 타고 온 게 막차였어."

"알아."

"근데 왜 여기까지 온 거야?"

"…너 혼자 보내긴 좀 그래서."

 

 

 

 술 취한 내가 혼자 가는 게 불안해서 정 반대 방향인 여기까지 와줬다는 사실이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해졌다. 막차도 끊겼는데 어떻게 집에 갈 거냐는 물음에 막차가 있으면 첫차도 있지 않겠냐고 대답하는 모습이 참 속도 좋은 듯했다. 하필 밤늦게까지 문을 연 상가가 없어서 꼼짝없이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시간도 늦었으니 그냥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라고 했지만 부모님도 계시는 집인데 늦은 시간에 그럴 수 없다고 첫 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단다.

 

 그럼 나도 네가 첫 차 타고 가는 걸 보고 들어가겠다고 막무가내로 전원우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녀석의 왼쪽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가져와서 내 귀에 꽂았다. 어쩐지 노래도 저를 닮은 차분한 선곡인 듯했다.

 

 

 

"내가 안 돌아봤으면 너 혼자 여기서 첫 차 기다렸겠네."

"그랬겠지."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대체 뭐 하고 있으려고."

"이것저것. 노래도 듣고… 달 구경도 하고. 달이 참 예쁘네."

"너 오늘 처음 봤지만 되게 뭐랄까, 독특하다."

"칭찬으로 받을게."

"참나. 그래라."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나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전원우의 말대로 달이 예쁘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까 버스를 타고 오면서는 술기운에 재잘 거리느라 하늘 볼 틈이 없었는데, 지금은 술도 깼겠다 맨정신으로 쳐다본 밤하늘은 생각보다 더 예뻤다.

 

 한참 동안 노래를 들으며 밤하늘 구경을 했고, 간간이 대화를 나누느라 지루한지도 모르고 시간이 흘러갔다. 시간은 지나 첫 차가 정류장 앞에 도착했고 차에 올라타는 전원우에게 인사를 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혼자였지만 전혀 적적하지 않았다. 예뻤던 달이 나를 따라오며 북소리를 들려주는 것 같아서.

 

 두근두근 울리는 달의 북소리가 말이다.

 

 

 

 

 

* * *

 

 

 

 

 

 그날 있었던 일 덕분이지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전원우와 어울리게 되었다. 같은 과 동기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같이 들을 강의도 많았고, 같이 지내다 보니 잘 맞는 부분도 많아서 더 친해진 것도 있었다. 하지만 딱 하나,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왜 따라오냐고!"

"너 따라가는 거 아니거든? 나도 그쪽 가려고 간다 왜."

"집 반대편인데 어디 가시려고요. 나 혼자 집 갈 수 있다고!"

"그 비틀 거리는 걸음걸이부터 바로 가시고 그런 소리 합시다 이지훈 씨."

 

 

 

 자주 날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점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편한 것까지는 아니고, 좋지만 미안하고 또 막상 와주면 좋은 알 수 없는 감정이 들게 만들었다. 초반에는 집 반대편 방향까지 나를 데려다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몇 번 데려다주다 그만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내 예상이 무색하게 전원우는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을 한 이후로도 날 데려다주는 걸 그만두지 않았다.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면 좋았다. 날 챙겨주는 만큼 그 애의 시선이 나에게 와 있는 거란 사실이 날 기분 좋게 만들었다. 너에게 내가 특별한 사람인 것 같은 기분도 좋았다. 너를 만날 때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따라다닌 간지러운 북소리가 결국 나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 * *

 

 

 

 

 

 그렇다고 바뀐 것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전원우의 친구였고, 전원우는 집으로 향하는 내 옆에 자주 함께 있었다. 이기적이었지만 나는 겁이 많았고 내 마음을 전원우가 알아주는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기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결국 졸업 학기의 종강 날이 되었지만 나와 전원우는 여전했다.

 

 종강을 핑계로 전원우와 단둘이 저녁을 먹기로 했고 자연스럽게 술을 시켜 시간을 끌었다. 졸업해도 계속 연락은 주고받겠지만 이제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갈 나도 전원우도 지금처럼 자주 붙어있긴 어려울 테니 마지막을 최대한 붙잡고 있고 싶었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는 술을 마셔야 했지만 신입생 때와 주량이 별 차이 없는 나는 마시는 척 테이블 아래로 몰래 버리길 반복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원우는 속 좋게도 드디어 지옥 같던 자소서와 안녕이라며 웃었다.

 

 

 

"너 막차 시간 30분 남았다. 편의점도 들렀다 가려면 슬슬 일어날까?"

"그래…. 가야지, 간다 가."

"오늘따라 왜 이리 기운이 없어? 종강만 하면 집에서 늘어지겠다던 이지훈은 어디 갔어?"

 

 

 

 그 이지훈 이제 슬퍼서 없다, 바보야…. 대답을 얼버무리고 겉옷을 챙겨 가게를 빠져나왔다. 전원우가 편의점에 들려 손에 쥐여주는 숙취해소 음료를 손에 들고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이 길도 이제 마지막이라는 게 씁쓸했다. 애석하게도 마지막 버스가 오지 않는 일 따위는 없었고, 버스는 결국 우리 동네에 도착했다. 이렇게 결국 마지막을 보내야 한다는 게 속상했지만 티를 낼 수가 없어서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늦었는데 오늘도 데려다줘서 고맙다. 차도 끊겼는데 택시 타고 들어가. 내가 택시비 줄게."

"택시비는 무슨. 알아서 잘 들어갈 테니까 다음에 술이나 한 번 더 사."

"언제든지 연락해. 이 형이 특별히 만나준다."

"형은 무슨 웃기고 있네. 맨날 술 취해서 비틀 거리는 게. 얼른 들어가."

 

 

 

 끝까지 장난스럽게 티격태격 거리며 전원우와 안녕을 했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내가 한심해서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파트 벤치에 털썩 앉아 겉옷에 얼굴을 묻었다. 바보, 멍청이. 이지훈 겁쟁이. 자책하면서 뒷머리를 벤치에 쿵쿵 찧었지만 아프기만 할 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머리를 벤치에 기대고 올려다본 하늘은 몇 년 전 신입생 OT 날 봤던 밤하늘처럼 달이 예쁘게 빛나고 있었다. 예쁘긴 예쁘다. 너무 예뻐서 서러울 만큼.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은지 얼마나 되었을까. 핸드폰 벨 소리가 정적을 깼고 발신자를 확인하자 전원우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지 생각하고 있던 건 어떻게 알고. 전화를 받으며 다시 정류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정류장에 앉아서 달을 보고 싶어졌다.

 

 

 

"아까 봐놓고 벌써 전화야?"

"그러게. 집 가는데 달이 예뻐서 너도 보라고 전화했어."

"너도 보고 있었어? 나도 보고 있었는데."

 

 

 

 이러고 있으니까 꼭 우리 OT 날 생각나지 않냐, 그때 너 막차도 끊겼는데 나 데려다줘서 나 엄청 미안했잖아. 전원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밤길을 걷다 보니 그날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나는 가벼운 추억 회상인 것처럼 계속해서 너와의 기억을 끌어냈다.

 

 

 

"그게 신입생 때였는데 이제 졸업이네. 되게 안 믿긴다."

"그러니까. 언제 벌써 졸업이냐."

 

 

 

 그 이야기를 끝으로 잠시 이야기가 끊겼지만 통화를 끊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너도 계속해서 통화를 끊지 않았고 조용한 통화는 서로의 숨소리만 들렸다. 잠시간 아무 말도 오가지 않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너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 하나만 이야기해도 될까?"

"뭔데?"

"음… 오늘 너 데려다주는데 너무 아쉽더라고. 사실 헤어지기 전에 이 말 하고 싶었는데 얼굴 보고 말하자니 입이 안 떨어져서."

"…어?"

 

 

 

 전원우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발걸음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귀로 들리는 그 말도 놀라웠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정류장에 앉아있는 전원우의 모습도 놀라워서. 왜 아직도 네가 여기 있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자리에 굳어서 네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날 데려다주는 길이 아쉬웠다고 말하는 네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나 어색했다. 이제까지 내가 해오던 생각과 똑같아서 하마터면 내가 혼잣말을 하고 있는 건가 착각할 것만 같았다. 여전히 눈앞에 보이는 네 모습은 내가 널 너무 보고 싶어서 만들어낸 허상 같았고.

 

 

 

"그럼 나도 하나만 물어봐도 돼?"

"응, 뭔데?"

"너 집 안 갔어?"

 

 

 

 내 말에 놀란 듯 벽에 기댔던 등을 벌떡 일으킨 네가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너는 마치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처럼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네 얼굴을 보는데 어쩐지 오늘은 미안한 마음보다 다행이라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아직 마지막이 아닌 것 같은 안도감.

 

 네가 앉아있는 정류장으로 길을 건너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자 놀랐던 네 표정도 점점 웃음으로 변해갔다. 어느덧 네 앞에 다다랐을 때 너는 달빛을 받은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는 넌. 집 안 가?"

"어. 어떤 바보가 첫 차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 네 웃음을 보니 나도 절로 웃음이 피어올랐다. 너는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로 집어넣더니 내 눈을 보며 물었다.

 

 

 

"앞으로도 계속 내가 너 데려다줘도 돼?"

 

 

 

 끝인 줄 알았던 마지막도 그다음은 처음이었다.

 

 

 

 

 


※ 본 연성은 전웆전력 100회 ‘88회-막차까지 30분’을 주제로 쓰여졌습니다. ※